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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농요 가사에 담겨있는 인생사

기사 등록 : 2015-11-18 16:09:00

박명호 samguri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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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언어로 달래다

 

 

 

 

 

밥이 하늘이다. 121년 전, 동학농민군이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과 함께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봉기하며 앞세웠던 절규다. 그들이 하늘이라고 외쳤던 밥이 왜 중요한지는 인간의 생존에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구석기시대부터 농업이 이뤄졌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농업이 주였던 농경사회였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다.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는 한 번에 많은 일손이 필요한, 가장 노동집약적 농사다. 두레는 상호부조·협동노동 등을 목적으로 마을 단위로 조직된 단체다. 주로 벼농사의 모내기와 김매기에 필요한 노동력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행해졌다.


평야가 많은 평택지역은 논농사가 주업이었다. 따라서 두레가 매우 발달했다. 평택민요의 ‘농요’(두레소리)는 두레에서 논농사를 지을 때 부르던 노래로 ‘모내기소리’와 ‘김매기소리’가 있다. 평택농요는 선창을 하는 선소리꾼과 여러 사람이 후창으로 받는, 유절형식으로 메기고 받는 형식을 띄고 있다.

 

 

 

1. 모심기 소리, 상사소리

모심기는 모를 모판에서 본 논에 옮겨 심는 것으로 논벼재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1년 농사는 봄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농사의 시기와 함께 모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가장 바쁜 시기도 바로 이 때다.


모내기는 평택지역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 대개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한다. 가뭄이 계속될 경우 6월 하순, 늦게는 7월 상순에 가서 모내기를 할 때도 많다.


단조롭고 고단한 노동…. 언어유희로 달래는 노랫말
모심기 소리답게 노랫말에는 벼 종류만 7가지가 나온다. 여주 이천 자체벼, 평택 안성 다마금벼, 광해 통진 녹두벼…. 모두 처음 듣는 것이지만 대부분 지역 명칭이 붙은 것처럼 나열된 이름의 벼는 예전에 해당지역에서 생산된 우수한 품종이었다.


모내기는 허리를 구부려서 하는 고된 노동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피로와 고통을 잊기 위해서 선소리꾼이 메기는 소리를 하면 다 같이 후렴구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노랫말의 재미난 말장난(언어유희·言語遊戱)도 단조롭고 지루한 모내기 일을 견디게 하는데 유용했다. 평택농요에서 언어유희는 ‘인간 칠십 노인벼’, ‘철커덕 푸드덕 쟁기찰’을 비롯해 ‘~벼’와 ‘~찰’ 등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이어지는 각운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리듬감이 살아나는 언어유희는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일에 일정한 통일성을 부여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미리 그려보는 풍년추수 노랫말
지루하고 힘든 모내기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풍년이 들어 가을에 추수하는 기쁨을 미리 그려보는 일이다. 대학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지쳤을 때 자신이 가기원하는 대학교 캠퍼스를 걸어보며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대학생활을 미리 느껴보고 힘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평택농요에도 모내기를 하면서 가을에나 가능한 풍년 추수를 노래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곡백과 무르익어 금광지도를 당도했네(…)/밖마당에 타작하고 앞마당에 노적할 제(…)/고대광실 높은 집에 금의옥식을 우적하고/세세연년 땅을 사니 광지전장 좋을시고(…)


이렇게 미리 앞당겨 풍년추수와 부자됨, 땅 사는 노래를 하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와 함께 현재의 고된 노동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현장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생명 살리는 쌀 생산 역군, 농부의 자부심 드러내는 노랫말
굳이 ‘밥이 하늘’이라고 했던 동학군을 말할 필요도 없다. 쌀과 밥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평택농요 노랫말에는 귀한 쌀을 생산하는 농부의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추수할 수 있도록 피를 뽑아내고 온갖 김을 다 맨 사람은 ‘오월농부 팔월송이 우리네 농부가 이룬 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초벌매기, 얼카덩어리
모를 심고 나면 김을 매야 한다. 김은 추수할 때까지 대부분 세 번 정도 맨다. 모내기가 끝나고 처음 매는 김을 초벌매기라고 한다. 대개 초벌매기는 호미로 한다. 호미로 맬 때는 손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세 번의 김매기 중에서 초벌매기가 가장 힘들다. 초벌매기를 ‘얼카덩어리’라고 하는데 이는 호미로 땅을 뒤엎는 내용의 소리를 후렴구로 받는 것에서 붙여졌다. ‘얼카’소리를 할 때 호미로 잡초덩이를 푹 파서 찍고, ‘덩어리’소리를 할 때 그것을 잡아당겨 들어냈다.


작업을 권유하고 독려하는 노랫말
노동요에 속하는 농요는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일에 능률을 더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지시하고 독려하는 말이 필요하다. 평택농요에는 이것이 어떻게 나타날까. 먼저 작업을 권유하는 노랫말이다.


높은데 뚝 떠 가지고/깊은 데다 쓸어 넣고/뒷 손질을 잘하세


물이 필요한 벼농사는 논바닥이 평평해야 한다. 물 잠김이 고르고 일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랫말에서는 높은 곳 흙을 떠서 낮고 깊은 자리에 넣어 바닥을 평평하게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다음은 작업을 독려하는 노랫말이다.


선소리꾼은 메기는 노랫말로 ‘허리가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하지 말고 한 번에 나가자’고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이 노랫말은 김매기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덧없음 노랫말
초벌매기 노랫말에는 일에 대한 기쁨과 성취감보다는 오히려 세월의 무상함, 삶의 덧없음이라는 비관적인 정서가 더 많이 발견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김매기라는 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고단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차 하면 다시 못오는 초로 같은 인생, 불로장생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로 그친 진시황 이야기….
님과 이별의 슬픔 노랫말


초벌매기에는 항우와 그의 애첩 우미인이 자결로 이별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천하명장/초패왕(항우)은/우미인을/이별 할 제/한숨은 쉬어서/태풍 되고/눈물은 흘려서/내를 이뤗네(…)


여기서 초패왕과 우미인의 이별은 김매기 하는 사람 자신들이 님과 이별한 처지, 거기서 느끼는 외로운 심정, 힘들게 일하느라 청춘을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회한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자신들이 위로를 받기 위한 목적이 크다.


3. 자진논매기 소리, 어이쳐하

자진논매기 소리는 초벌논매기에서 빠르게 김을 맬 때 부르는 노래다. 노래 앞부분에서는 해가 져도 돌아갈 갈 곳이 없는 처지를 노래하지만 중간에서는 제비가 날고 원앙이 춤추는 행복한 모습,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서는 태평성대로 끝을 맺는다.

4. 두벌매기소리, 대허리
초벌매기를 마치고 보름(15일) 뒤에 두벌매기를 한다. 초벌매기 때보다 모가 크고, 김매기가 좀 더 쉽다. 호미로 김을 매던 초벌 때와는 달리 두벌매기에서는 ‘어화슬슬 대허리야’라는 후렴구를 받으며 두 손으로 논을 훔치듯 작업한다.

 

 

 

 

늙음에 대한 탄식의 노랫말
두벌매기 노래는 늙음에 대한 탄식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늙고 병들면 놀지 못하니 젊어서 놀자고 한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것도 봄(春), 푸름(靑), 꽃(華)처럼 모두 젊음을 나타내는 노랫말 일색이다.
여기에는 평생을 일로 보내면서 청춘이 덧없이 지나갔으며, 현재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탄식하는 슬픔이 반영돼 있다.


님과 행복한 만남 소망…신세한탄 노랫말
노랫말에는 님과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지체되거나 결코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꽃에 연방아 앞에/연밥 따는 저처냐야/연밥일랑 내 따 줄게/내 품안에 잠들어 다오/잠들어 주긴 어렵진 않소만/연밥 따기가 늦어를 가오(…)
노랫말에는 사랑할 시간도 없이 일로 청춘을 보낸 안타까움에 깊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무엇이 있을까. 신세한탄 뿐이다.
(…)산전수전 다 버리고/타도 타도 월타도에/누구를 바라고 나 여기를 왔나(…)

 

 

 

 

 

인생의 허망함을 드러낸 노랫말
두벌매기 노랫말에도 초벌매기처럼 인생의 허망함을 담아내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구체적으로 인생은 백일몽이거나 풀잎 끝에 맺힌 이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생일사 믿음없어/백년광중이 몽중이라/부귀영화가 좋다 하나/달팽 뿔 다름없네(…)

 

5. 만물매기소리, 방개타령
만물매기는 두벌매기를 하고 보름(15일) 뒤에 하는 김매기다. 이 때는 느린 동작으로 두 패로 나눠 기러기 날개처럼 원형을 만들어가며 김을 맨다.


원형이 만들어지면 휘모리장단에 맞춰“ 영차 영차”소리를 내며 두 손을 번쩍 들어 끝내기 신호를 하고 춤추며 논다.


만물매기를 할 때 부르는 노래가 방개타령이다. 여기서 방개는 물방개를 이르는 말로 메기는소리에 ‘~아라 방~개~ 흐응개가~ 노온~다~’와 ‘에헤야 데여라 방개야’ 하는 후렴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추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는 만물매기는 사실 크게 풀을 뽑거나 논바닥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물위를 다니는 방개처럼 술렁술렁 김을 맨다고 해서 방개타령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남·여간 사랑 일색 노랫말
방개타령이 농요임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에서 농사나 노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초벌매기(높은데 뚝 떠 가지고/깊은 데다 쓸어 넣고)와 두벌매기(다 맸네)에서 잠깐씩 보여줬던, 농요라는 최소한의 사실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대신 방개타령의 노랫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간 연애, 사랑, 이별 등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만물매기가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모내기나 초벌, 또는 두벌매기에서 요구되는 협동심, 집중력 등이 상대적으로 적게 요구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만물매기가 물 위를 다니는 방개처럼 일을 쉽게 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춤을 추며 즐기는 일로 이어지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랫말 중에는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일본대판이 얼마나 좋길래 꽃 같은 날 두고서 연락선 탔느냐’노랫말에 나오는‘ 연락선’은‘ 관부연락선’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한반도와 대륙을 침탈할 목적으로 부산에 정기 여객선을 운항한 것은 1905년 9월 11일.


여객선은 1600톤급 규모로 일본 시모노세키( 下關) 의 ‘관’자와 부산의 ‘부’자를 합쳐 관부연락선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평택농요의 방개타령이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