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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믿음이 불러온 비극

기사 등록 : 2015-04-08 15:28:00

권유진 kwonnew01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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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The Hunt, 2012)

 


▲    ⓒ월간 평택문화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악마 비스토’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부산의 한 도로에서 차량이 그레이 하운드를 차 뒷부분 견인 고리에 묶어 달리고 있는 영상과 사진이 온라인상에 공개되며 시작됐다. 누리꾼들은 파렴치한 동물학대라며 차 주인을 악마로 몰아갔고, 그는 수많은‘ 악플’과‘ 신상털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경찰의 수사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경주견으로 이용되는 그레이 하운드를 차에 태우자 구토를 하는 등 극도의 스트레스 증상을 보여 차 밖에 고리를 묶어 이동한 것이다. 수많은 오해를 불러왔지만 당시로서 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덴마크 출신 토마스 빈더베르크 감독의 2012년 작‘ 더 헌트’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 공동체의 비뚤어진 집단의식이 가져오는 비극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일부 극장만 소규모로 개봉했음에도 3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주연을 맡은 메즈 미켈슨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201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월간 평택문화

 

아내와 이혼하고 시골마을에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그를 믿고 따른다. 루카스에게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 분)의 딸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는 더욱 특별한 아이다. 낯선 길을 혼자 가지 못할 만큼 내성적인 클라라는 자신을 챙겨주는 루카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에게 선물을 주고, 입에 키스를 하는 등 그를
난처하게 만든다.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입에 키스를 하는 건 엄마, 아빠와 하고, 다시는 하지 말라’며 잘 타이른다.

 

루카스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한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에게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말을 남긴다. 클라라의 한마디로 한 순간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린 루카스는 누구보다도 신뢰받던 사람에서 추악한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며, 평화롭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된다.

 

 

 


▲    ⓒ월간 평택문화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그 마을 사람들 중 하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루카스에게 가해지는 학대는 잔인하지만,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판단이나 행동이 충분히 이성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편견에 근거했지만 유치원 원장은 죄 없는 아이들을 지켜내야겠다는 정의로운 신념을 갖고 행동하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조한다.‘ 그런 일이 없었다’는 아이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라고 치부해버리는 잘못된 심리학은 클라라의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모든 어른들이 클라라의 말을 믿고, 동조해버리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나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들려준다. 얼마 전까지 따뜻한 선생님이자, 동료였던 루카스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서면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집단 폭력은 점점 심해진다. 공공장소에서 무차별하게 학대를 가하기도 하고, 그의 아들은 손가락질 당하며, 키우던 고양이 마저 죽임을 당한다. 이미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잘못된 신념과 오해로 빚어진 마을의 폭력적인 분위기는 점점 자라나 그 진위여부도 동기도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몇 차례 반성의 계기가 주어졌음에도‘ 현대판 마녀사냥’을 반복하고 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저 그 상황이 담긴 동영상과 사진만으로 당사자를 심판하는 사람들. SNS를 통해‘ 막말남’‘, 무개념녀’ 등으로 이름 붙여진 피해자들은 인터넷 속에서 모든 이들의 타깃이 돼 무차별한‘ 악플’과‘ 신상털기’에 시달린다. 사건의 진위여부가 밝혀진 뒤, 전후 상황도 모른 채 비난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다수에 숨어버리는 일이 계속된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해왔을까? 영화‘ 더 헌트’는 나 역시‘ 신념’이라는 벽에 갇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아닌지, 정의로움으로 포장된 다수의 그림자에 숨어있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