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지영희 유족, 경기관광공사, 경상남도 산천군청

▲  경남 산청군에 있는 기산국악당
  ⓒ월간 평택문화

색, 공간, 이미지, 인물, 시간···. 모든 것이 마케팅 수단이 되는 시대다. 특히, 각 지자체마다 지역의 역사적 인물 마케팅에 혈안이다.
일찌감치 수원은 화성행궁과 정조대왕으로 효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가까운 아산은 성웅 이순신의 고향으로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안성은 마지막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를 모티브로 한 바우덕이축제를 성공시켜, 큰 경제효과를 얻고 있다.
역사적 인물 마케팅은 단순한 관광효과뿐만 아니라 도시 이미지 확립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평택이 낳은 국악명인 지영희. 하지만 정작 평택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지영희기념사업회가 매년 개최하는 공연과 경연대회 외에는 지영희 선생의 이름을 건 공연이나 행사는 없었다.
이번 특집 기사를 준비하면서 지영희 선생의 고향인 평택에서도 ‘영희’라는 이름 탓에 그를 여자로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음악적 위치나 국악사에 끼친 지대한 공헌에 비하면 허탈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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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희 선생 유품. 태평소, 녹음기, 피리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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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희 전시관 5월 개관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영희 선생의 유품과 업적이 보관될 전시관이 개관한다는 것이다. 경기관광공사(사장 홍승표)는 오는 5월 한국소리터 어울림동 1층 화수분 카페 자리에 지영희 전시관을 개관한다고 밝혔다.
앞서 경기관광공사는 2014년 10월 3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평택호예술관에서 3개월간 평택-아산연계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지영희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국악음반박물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지영희 선생의 유족을 한 명 한 명 설득해 전시한 유품은 악기, 희귀음반, 녹음기, 교본·교재, 창작곡악보, 무용곡 작곡음반, 카네기홀 공연 영상과 기념음반 등 400여 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희귀 음반 및 자료집은 음악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스토리텔링화한 지영희 선생의 일대기는 곧 책으로 묶여질 예정이다.
경기관광공사의 적극적인 지영희 마케팅은 그간 평택지역과 일부 매체에서만 다뤄지던 지영희 선생을 많은 신문·방송매체에 등장하게 했다. 마케팅에서는 성공적이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다. 지영희 유족들은 상설전시관 마련을 조건으로 영구기증을 약속했고, 경기관광공사는 한국소리터와 협의해 전시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현재 전시장 구성에 관한 세부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관계자에 의하면 지영희 선생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관과 소규모 공연장이 들어설 전망이다. 아울러 지영희 선생과 비견될 만큼 음악적 성취를 이뤘다는 그의 부인이자 가야금 명인, 성금연 여사에 대한 이야기도 전시장에 함께 담겨질 예정이다.

▲ 뉴욕에서 발매된 지영희 선생이 참여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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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규모의 한계, 아쉬움 남아
어렵게 모아온 유품들을 전시할 수 있게 됐지만, 전시장 규모가 작아 400여 점을 모두 전시하지는 못하게 됐다. 지영희 전시관이 들어설 공간의 규모는 156㎡, 47평 남짓이다.
지영희 선생이 직접 연주한 해금 2대, 피리 6대, 태평소 1대와 전국 각지의 경기무속음악을 채록할 때 사용한 녹음기와 같은 유품들은 전시가 가능하나, 협소한 전시장 규모로 인해 그의 방대한 업적을 보여주는 악보와 앨범들을 한 눈에 볼 수 없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지영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박헌봉
전시관 설립으로 지영희 선생의 유품이 평택에 자리잡게 됐지만, 다른 지자체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영희 선생과 더불어 국악계 큰 스승으로 불리는 기산 박헌봉(朴憲鳳, 1907∼1977). 국악예술학교 초대 교장으로 지영희 선생과 국악관현악단 창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박헌봉 선생의 고향인 산청군은 지난 2010년 기산 박헌봉 선생 기념사업으로 산청군 단성면 산동길 69 일원에 있는 그의 생가를 복원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총 사업비 38억5천만 원,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13년 ‘기산국악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산국악당은 전체부지면적 5천609㎡에 한옥으로 건축된 각 129.6㎡ 규모의 기산관·교육관·전시관 3개동과 1천270㎡ 규모의 야외공연장 및 주차장 70면을 갖췄다.
전시관에는 박헌봉 선생의 유품 및 국악기 50여 점이 전시돼 있어, 그의 생애와 업적을 접하면서 다양한 국악기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매주 수요일 운영되는 가야금 교실과 민간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 등으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로 9회째 이어오는 ‘기산국악제전’과 ‘박헌봉 국악상’ 시상이 기산국악당에서 열려 산청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물질적, 정신적 유산 이어가야
지영희 선생의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생가 복원이다. 지순자 명인에 따르면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에 있던 지영희 선생의 생가는 현재 헐리고, 과수원이 들어선 상태다. 현재로선 평택 어디서도 지영희 선생이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평택이 지영희 선생의 고향이자, 음악적 재능을 싹 틔운 산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가 복원은 절실하다.
둘째, 학술대회 재개다. 지영희기념사업회와 평택문화원은 2009년과 2010년, 2회에 걸쳐 ‘지영희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제1회 학술대회 발표집 서문에는 지영희의 삶과 예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크게 네 개의 주제를 연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학술대회는 제2회를 끝으로 현재까지 5년 동안 중단된 상태다.
생가 복원이 지영희 선생을 기리기 위한 외형적 부분이라면, 학술대회 재개는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학문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지영희 선생의 직계제자인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새로운 지영희기념사업회장으로 선임되고, 경기관광공사의 노력으로 지영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 그를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을 시작할 적기(適期)일 것이다.